연장전은 달라야 한다.

해가 저문 뒤 시간이 좀 지난 듯 주변은 어스름했다.
화성의 표면처럼 황량한 벌판에 누렇고 불그스름하고 시커먼 흙과 바위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드문드문 널려 있었다.
커다란 바위들 사이에 난 검붉은 흙길 끝에는 두터운 나무문이 닫혀 있었다.

중세 수도승들처럼 무늬라고는 없는 누렇고 꺼먼 옷을 입은 사람들 대여섯 명이 문 앞에 모여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어느새 그 일부가 되어 사람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 받게 되었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우리는 죽어서 여기에 왔네. 곧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심판받게 될 걸세"

머리가 멍해졌다.
가족들과 여자친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것, 친구들 아무에게도 어떠한 말도 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졌고 그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에 슬픔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감정은 허망함이었다.

'죽어서 저승에 왔는데 내가 살면서 해 놓은 것이 뭐가 있나'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한 것이라고는 그저 밥먹고 자고 숨 쉰 것 뿐.

삼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체 뭘 한 것이란 말인가, 심판 받을 거리조차 없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는 것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살면서 뭘 한거지. 이렇게 죽을 거면 왜 태어났던 것인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난 왜 살았던 거지?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건가? 이제 다 끝나버린 이야기란 말인가?

한 사람씩 문 안으로 들어가고 이제 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내 차례가 오는 거구나. 그냥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거구나.

한발짝 한발짝 문 앞으로 걸어갔다. 끝이구나. 그냥 끝이구나. 아무 것도 없이. 아무런 한 것도 없이.



'돌아가라'


문 앞에서 돌아가란 말을 들었다.
아직 더 살 수 있는 건가? 무언가를 이룰 시간을 주신다는 말인가?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나는 원래 오늘 밤 자다가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일까?
지금 숨쉬는 것은 오늘의 죽음을 연장해 준 덕분인건가?



꿈을 꾼지 이제 석달이 지났는데삶과 죽음사이...란 글을 보다가 문득 그 때 꿈이 생각났다.
아 이 분은 이렇구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구나.



잊고 있었다. 지금 나의 삶도 단지 죽음을 연장해 준 것일 뿐이라는 것을.
죽음의 문 앞에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음에 한숨쉬고 눈물 지을 수는 없다.
삶의 한 시간 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잠자리에 누웠는데 내일 일어나지 못할 수 있다.
내일도 이렇게 살아서 숨쉬고 키보드를 두드리라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오늘 몸과 마음을 다해서 사는 것. 그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다.
연장전은 달라야 한다.

by 耕哲 | 2008/06/24 16:41 | Diar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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