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_정치인

가장 적합한 놈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현상에도 접목하여 설명하고자 했던 Social Darwinism은 우생학과 함께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논거로 쓰여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politically incorrect)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0년대 초, 독점을 통해 미국 경제를 주름잡았던 대부들의 말에서 Survival of the fittest의 정치적 의미를 알 수 있다.

The growth of a large business is merely a survival of the fittest.
TheAmerican beauty rose can be produced in the splendor and fragrancewhich bring cheer to its beholder only by sacrificing the early budswhich grow up around it.

John Rockfeller

While the law of competition may be sometimes hard for individual, it is best for therace, because it ensures the survival of the fittest in everydepartment.

Andrew Carnegie


Social Darwinism을 적용해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 정점에 있는 정치인들은 단지 이 사회환경에 가장 적합했던 것 뿐일까?
그렇다면 이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살아남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정치의 문제 중 하나는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해도 여전히 뽑히는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에 나타나지도 않고 룸사롱과 골프장을 오가며 4년을 보내도 꼬박꼬박 다시 당선시켜주는 지역민들이 있는 한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리인_정치인(agent)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_국민(principal)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보상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즉, 까불다간 다음 선거에 떨어진다는 것)으로 얻어진 결과물인데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문제다.

공정한 규칙과 경쟁환경이 전제되지 않고, 결과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그에 가장 적합한 자들이 승승장구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언론에 대한 정부의 일련의 조치들은 규칙, 경쟁환경, 평가 모두를 망칠 수 있다는 면에서 우려가 매우 크다.

by 耕哲 | 2008/08/15 01:59 | Not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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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모과 at 2008/08/18 01:28
놀러 오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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